한 스푼의 시간 / 구병모 장편소설 / 예담
푸켓여행을 함께 시작했던 책
세제가 물에 스르륵 흔적도 없이 녹듯
내 마음에 녹아들었다. 로봇과 함께 살아갈 세상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
☑️밑줄 기록(본문)
솔벤트
*솔벤트: 용액을 만들기 위하여 다른 물질을 용해하게 하는 물질. 설탕을 녹이기 위하여 사용하는 물이 이에 해당한다. - Daum 어학사전
마음이 눅진해지는 걸 느낀다.
*눅진하다
1.물기가 있어 말랑하면서 끈끈하다. 2.부드러우면서 끈기가 있다
영. soft and sticky - Daum 어학사전
도대체 무언가를 책임지고 싶어 하는 법이 없는 나라님들
고가의 로봇보다 중요하거나 피곤한 일들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빨래처럼 일상 곳곳에 널려 있다.
" 아니 생각해보면....가족이고 지랄이고 딱히 상관은 없나. 가족이라서 오히려 돌아서기도 부서지기도 쉬울 수 있겠다. 볼꼴 못 볼 꼴 다 봐가면서 실망도 경멸도 커지니까."
혈연을 비롯한 모든 관계를 한순간에 잘라내는 도구는 예리한 칼날이 아니다.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그는 자식 하나 바라보고 산다는 보통 사람들 입말이 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비로소 생각해본다. 인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로봇 덕에, 그동안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던 가치관들과, 온몸의 근육에 배어 있어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습관들 하나하나가 새삼스레 당혹스러워지며, 무엇보다 인간으로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실상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느낌은 역시 느낄 수 있는 존재에게 들려주었을 때 성립되는 추상적인 개념이며,
"무너져 내린다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노후 건물의 철거현장...꺾이고 부서진다는 점에서 외관상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무너짐은 정말 저 무너짐과 같은가. 무너진다는 건 결국 그 형상을 대하는 사람의 슬픔이나 분노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너무'라든가 '조심'의 정도와 기준이 은결에게는 언제나 모호하여, ...
가족이란 결국 무거운 부담과 막대한 담보 및 거미줄 같은 채무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인질인가. ... 가족이 휴식이나 피난처가 아니라 피로와 염증을 유발하는 일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둘러선 구성원의 표정이 상기시킨다.
ㅗ감읍하다
* 감읍하다 :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다 - Daum어학사전
(데이트폭력) 합의는 조용히 이루어지고, 가해자는 사과 한마디 없이 어떠한 처벌도 당하지 않으며, 식어버린 고기 위의 기름 더께를 긁어내듯 지탱해온 연인의 관계는 그렇게 매조지가 된다.
* 매조지: 일의 끝을 단단히 맺어 마무리하는 일 - Daum어학사전
송곳니 같은 호기심
사람은 인과관계를 항상 염두에 두는 생물이며, 무엇보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추임새를 넣으려 애쓰는 존재다.
말도 안 되는 걸 묘하게 마치 틀린 데 없는 것처럼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는 매니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시각적 불편을 주는 사람이 세상에는 분명 있다면서 말이야....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살아갈 수 없다. 대개 적의와 비난의 언사로 흘러넘치는 세계에서 그나마 들어줄 만한 말이라곤 공허한 말장난이나 모호한 비유 정도일 것이다. 그 밖에도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을 마주 대하며, 하기 싫은 일을 양보해서 다섯 번 가운데 한 번은 하고, 맞추고 싶지 않은 분위기를 띄우며, 따론 누군가를 휴지통으로 삼기는커녕 누군가 뱉어낸 쓰레기를 자신이 기꺼이 삼켜주는 일도 한다. 그러므로 시호는 조율과 적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스스로의 욕망을 누르거나 지우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시호는 자신이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 알파(Α 또는 α)에서 오메가(Ω 또는 ω)까지. 그리스 문자의 처음에서 끝까지를 말하는 글자.
진료와 검사란 기본적으로 지연과 미정과 유예의 행위다. 소모되는 현재의 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용도이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인간이 가장 흔히 사용하고 선호하는 반응은 적당한 맞장구다.
이름을 붙여준 것을 떠나보내는 방법에 아직도 익숙지 않다.(력이ㅋㅋㅋㅋ)
요즘은 '좋아요'버튼 한 번 클릭 받자고 별 짓 다 하는 종자들이 워낙 많으니,
보통 사람은 스스로 죽지 못할 때 별 수 없이 살아가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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